부처님께서는 베살리의 장자(長者) 유마힐(維摩詰)이 앓아누워 있는 것을 아시고 사리풋타[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문안을 하여라.” 사리풋타는 부처님께 말했다. “부처님, 그에게 문병하는 일을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숲속 나무 아래 앉아 좌선하던 옛일이 생각납니다. 그때 유마힐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리풋타님, 앉아 있다고 해서 그것을 좌선(坐禪)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삼계(三界)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좌선이라고 합니다. 마음과 그 작용이 쉬어버린 무심한 경지에 있으면서도 온갖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을 좌선이라고 합니다. 진리에 나아가는 길을 버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범부의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좌선입니다. 마음이 안으로 고요에 빠지지 않고 또 밖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을 좌선이라고 합니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을 좌선이라고 합니다. 만약 이와 같이 앉을 수 있다면 이는 부처님께서 인정하시는 좌선일 것입니다.’ 부처님, 저는 그때 이런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대목은 《유마경》에서 가장 강렬하게 인용되는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행의 틀을 뒤집어 놓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좌선이라 하면 조용한 방, 가부좌 자세,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유마힐은 사리불에게 “그것만이 좌선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겉모양이 아니라 마음의 자유가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수행을 장소와 자세에 가두지 말고, 삶 전체로 확장하라는 선언입니다.
사리불은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 지혜 제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 사리불조차 유마힐 앞에서는 말문이 막혔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사리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유마힐의 가르침이 기존의 수행 개념보다 한 차원 넓었기 때문입니다. 즉 “숲속에서만 닦는 수행”에서 “세상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으로 시야를 넓혀 준 것입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시장에서도, 가족과 대화하는 자리에서도 수행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마힐이 말한 “삼계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삼계란 욕계·색계·무색계, 즉 욕망과 집착이 작동하는 중생 세계 전체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세속을 떠나야만 평정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속 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갖는 것이 진짜 선정이라는 뜻입니다. 바람이 없는 곳의 촛불은 누구나 고요합니다. 그러나 바람 부는 곳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빛이 진짜 힘입니다. 수행자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마음과 작용이 쉬어 있으면서도 온갖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구절은 무기력과 무심을 혼동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참된 고요는 멍한 상태가 아닙니다. 마음속 소음은 멎었지만 필요한 일은 또렷하게 해내는 상태입니다. 숙련된 장인이 손은 바쁘게 움직여도 내면은 고요한 것과 같습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스트레스는 적은데 집중력은 높은 상태입니다.
“진리의 길을 버리지 않고 범부의 일상을 사는 것”은 대승불교의 핵심 정신입니다. 산속에 들어가 혼자 깨닫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자비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회사에서 억울한 말을 들어도 바로 분노로 반응하지 않는 것, 가족의 반복되는 불평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것, 이것이 생활 속 좌선입니다. 좌복 위 1시간보다 하루 종일 깨어 있는 태도가 더 어려운 수행일 수 있습니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든다”는 말은 오해하기 쉽지만 깊은 뜻이 있습니다. 번뇌를 억지로 없애야만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번뇌의 실체를 바로 보면 거기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화가 올라올 때 ‘나는 왜 이래’ 하며 싸우지 말고, ‘지금 화가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화는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 됩니다. 열반은 먼 미래의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의 자유입니다.
이 장면에서 사리불이 문병을 거절한 이유도 분명합니다. 유마힐은 병들어 누워 있지만 사실은 병든 중생을 깨우치는 스승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몸은 아파도 지혜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몸은 멀쩡해도 마음이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히면 이미 깊은 병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육체의 건강만이 아니라 마음의 건강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좌선은 “앉아 있는 자세”보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수행은 절에 가야만 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바로 실천하려면 ㆍ화날 때 3초 멈추고 호흡 보기 ㆍ일하면서 한 번씩 몸의 긴장 풀기 ㆍ상대 말 끊지 않고 끝까지 듣기 ㆍ좋고 싫음이 올라올 때 즉시 반응하지 않기 ㆍ하루 끝에 내 마음이 어디서 흔들렸는지 돌아보기. 이것이 유마힐이 말한 살아 있는 좌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