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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의 선결 조건

티나는이야기

by 대공거사 2023. 2. 2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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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선의 목적

참선의 목적은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는 것(明心見性)입니다. 자기 마음의 오염이 없어지면 진실로 자성(自性)의 참모습을 봅니다. 오염(汚染)이란 바로 망상과 집착이며, 자성이란 곧 여래(如來)의 지혜와 덕상(德相)입니다. 여래의 지혜와 덕상은 모든 부처님과 중생이 다 같이 갖추고 있는 것으로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만약 망상과 집착을 여의면, 자기의 여래 지혜와 덕상을 증득(證得)하여 곧 부처가 될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곧 중생인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내려오면서 어리석게 생사(生死)의 구렁텅이에 빠져 오염된 지 오래이므로 능히 그 자리에서 단박에 망상을 벗어나 실답게 본래 성품(本性)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참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선의 선결 조건은 바로 망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참선의 선결조건 - 일체를 놓아라

그렇다면 어떻게 망상을 버릴 것인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것으로 '쉼이 곧 깨달음(歇卽菩提)'이라고 하신 이 '쉼(歇)'만한 것이 없습니다. 선종(禪宗)은 달마 조사께서 중국에 오시고부터 육조 혜능(慧能) 대사에 이른 후에 선풍(禪風)이 널리 퍼져 고금에 떨쳤습니다. 그러나 달마 조사와 육조 스님께서 학인들을 가르친 가장 긴요한 말씀 중에 "모든 인연을 한꺼번에 쉬어버리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屛息諸緣 一念不生)" 하신 말씀 만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인연을 한꺼번에 쉬어버린다' 함은 '온갖 인연을 다 놓아 버린다'는 뜻이며, 그래서 "온갖 인연을 다 놓아 버리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萬緣放下 一念不生)"고도 했습니다. 이 두 구절의 말씀은 실로 참선의 선결 조건이며, 이 두 구절의 말씀과 같은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면 참선은 단지 말뿐이고 성공할 수 없어, 그 문안에 들어서는 것도 아예 불가능할 것입니다. 온갖 인연에 뒤덮이고 휘감겨 생각 생각이 생멸(生滅)한다면 그대는 어디 참선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온갖 인연을 다 놓아 버리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참선의 선결 조건임을 우리가 이미 알았다면, 어째서 그것을 이루지 못합니까? 근기가 수승한 사람(上焉者)은 한 생각을 아주 쉬어 버려 곧바로 무생(無生)에 도달하고 단박에 깨달음을 증득하여 털끝만치도 얽매임이 없게 됩니다. 그 다음 사람은 이치(理)로써 현상(事)을 물리침으로써(除) 비로소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이 모두 거짓 이름(假名)일 뿐이며, 원래 나와 자성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다 꿈과 같고 환(幻)과 같으며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습니다. 나의 이 사대색신(四大色身)과 산하대지(山河大地)는 자성 가운데 있는 것으로서, 바다 가운데 뜬 거품(海中浮 )과 같아 일어났다가 꺼졌다 하지만 본체를 가리지 않습니다.

일체의 환(幻)과 같은 생주이멸(生住移滅) 현상을 따르면서, 좋아하고 싫어하고 취하고 버리는 마음(欣厭取捨)을 일으키지 말고, 통째로 놓아버려서(通身放下) 죽은 사람처럼 되면 자연히 육근(六根)이 육진(六塵)에 반연하는 식심(根塵識心)이 떨어져 나갈 것이며,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고 애착하는 마음(貪瞋痴愛)도 모두 소멸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몸을 통한 아프고 가렵고 괴롭고 즐거운 것과, 배고프고 춥고 배부르고 따뜻한 것과 영화롭고 욕되고 생사와, 길흉화복(吉凶禍福)과, 헐뜯고 칭찬하고 얻고 잃는 것과, 안전하고 위태롭고 험하고 평탄한 것 등을 모조리 도외시해 버리고, 이런 식으로 헤아리는 것도 놓아 버리고, 하나도 놓고 일체도 놓아서 아주 완전히 놓아 버려야만, '모든 인연을 놓아 버렸다(萬緣放下)'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인연을 다 놓아 버리면, 망상은 스스로 없어지고 분별은 일어나지 않아 집착을 여의게 됩니다. 여기에 이르면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 되어, 자성광명(自性光明)이 온통 환히 드러납니다. 이렇게 되면 참선의 조건이 구비된 것이며, 다시 노력하여 진실로 참구(參究)하면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볼 수 있는 분(分)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성불의 방편

근래에 참선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법(法)이라 하는 것이 본래 법이 아니며, 한 번 말에 떨어지면, 곧 실다운 뜻이 아니다. 이 한 마음을 밝히면 본래 부처이며, 바로 그 자리에서 아무 일도 없고 모든 것이 제각기 눈앞에 이루어져 있어, 수행을 말하고 증득을 말하는 것은 모두가 마(魔)의 이야기다"합니다.

달마 스님이 중국에 오셔서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자신의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게 한다(直指人心 見性成佛)"고 하심으로써 이 땅의 모든 중생이 다 부처임을 아주 분명하게 일러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바로 이 자리에서 이 청정한 자기의 성품을 알면, 일체에 수순(隨順)하되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밤이나 낮이나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도무지 마음이 변하지 않으니, 이것이 지금 다 이루어져 있는 부처이며, 마음 쓸 필요도 없고 힘들일 필요도 없으며, 다시는 해야 할 일도 없어, 털끝만치도 말이나 생각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를 이루는 일이 가장 쉬운 일이며 가장 자재(自在)한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 하기에 달린 것이므로 밖으로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중생이 오랜 겁이 지나도록 사생육도(四生六道)에 윤회하며 영원히 고해(苦海)에 빠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성불하여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얻기를 원한다면, 부처님과 조사(佛祖)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진실로 믿어야 합니다.

만약 일체를 놓아 버리고, 선(善)도 악(惡)도 모두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그래서 제불보살(諸佛菩薩)과 역대 조사께서 일체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고 발원하신 것이니, 이것은 아무 근거 없이 공연히 발원을 하고 큰 소리를 치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말한 법(法)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며, 부처님과 조사께서 되풀이해서 천명하시고 부촉(咐囑)하신 진실한 말씀에는 조금도 헛되거나 거짓된 것이 없습니다.

대지의 일체 중생이 무량겁 이래로, 생사고해에 빠져서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면서 윤회를 그치지 않는데, 이는 마음이 미혹하고 전도(顚倒)되어 있어, 깨달음을 등지고 티끌(무지)과 합했기(背覺合塵) 때문입니다. 마치 순금이 똥구덩이에 빠진 것과 같아서 사용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 더러움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은 대자비의 마음으로 부득이 팔만 사천 법문을 설하여, 각양각색으로 근기가 서로 다른 중생들의 탐진치애(貪瞋痴愛)의 팔만 사천 습기(習氣)의 병을 다스린 것이니, 마친 순금 빛깔 위에 여러 가지 더러운 때가 끼어 있으므로 우리로 하여금 대패로 깎고, 솔로 털고, 물로 씻고, 헝겊으로 닦아 내어 깨끗이 하도록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 다시 말해 모든 방편문이 다 묘한 법이며, 모두가 생사를 해결하여 성불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다만 그 사람의 근기에 적합한가 아닌가가 문제될 뿐, 굳이 법문의 높고 낮음을 구분할 것이 아닙니다. 중국에 전해지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법문은 종(宗, 선종), 교(敎, 교종), 율(律, 율종), 정(淨, 정토종), 밀(密, 밀교)인데, 이 다섯 가지 법문은 사람마다의 근기와 성향에 따르기 위한 것이니, 어느 것이든지 한 문만 수행하면 됩니다. 한 문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니, 오래도록 변함없이 나아가면 반드시 성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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