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그 춤사위의 구성으로 볼 때 우리 민족 대대로의 역사적 삶의 몸짓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골격이 세워지고 오랜 세월의 형성과정을 거쳐 조선조 말에 완전히 하나로 독립되어 정립된 민속춤으로 우리 역사의 구조이며 역사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마한(馬韓)의 답지저앙(踏地低昻), 예(濊)의 무천(舞天), 부여(夫餘)의 영고 등 삼국지 동이위지전(東夷魏志傳)에 나타난 종합적 예술형태인 제천의식의 몸놀림으로부터 승무의 근원적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조선조 말에는 모든 것을 습합하고 아우른 민중적인 민속춤으로 정립되었다. 다시 말해서 승무는 수 천년 살아온 삶의 지혜와 역사의 직관적 형상화이다.
승무는 승(僧)의 무(舞)로서 춤 이름에서부터 불교색채를 띠고 있다.
한국 전통 춤의 핵심을 이룬 춤의 기본인 동시에 춤의 중심을 이룬다. 장구한 역사와 함께 생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이 춤은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어 국가 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그 춤의 예술적 구성이나 춤사위의 예술적 가치는 학계나 예술계에 중요한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춤동작에서 나타나는 내면의 세계는 중요한 본질적 의미를 갖고 있다. 긴소매에서 그려지는 움직임의 선은 생동하는 선으로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만사의 본체를 인식하는 내면적 인식 세계를 포함한 생명의 선이다.
승무는 속인이 승복을 입고 추는 민속무용으로 승무에 대해서는 구구한 견해가 엇갈려 전해지고 있으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의식으로서의 춤이 아닌, 흥과 멋과 기교가 자유분방하게 어우러지는 서민의 애환이 담긴 춤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보통 파계승의 번뇌 등을 주제로 삼아 현대적인 창작을 통해 행해진다.
춤 옷은 기본적으로 치마, 저고리나 바지, 저고리를 입고 불교의 가사와 장삼을 두르고 고깔을 쓴다.
가사와 장삼은 본래 것보다 훨씬 길어졌고 가사도 원래보다 넓은 폭으로 되어 있지만 승무에서는 좁고 긴 띠로 변하여 어깨에 걸친 다음 허리 밑에서 느직하니 고리로 매어준다. 그리고 고깔도 현재 불교에서는 사용치 않는다.
이와 같이 불교색채의 춤 이름과 춤 옷을 가지고 있지만 불교 춤이라고 만은 볼 수 없고, 불교와의 깊은 영향관계를 가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춤 이름에 나타난 ‘승’이란 소승을 넘어선 대승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나 자신을 포함한 온 중생’을 뜻한다.
불교경전에 ‘자타불이 불아동체(自他不二 佛我同體)’ 라는 구절이 있다.
◆승무의 형성과정
법화경설-통일신라때 불교예술이 꽃을 피우고 특히 고려에 와서는 국가적으로 불교를 중심으로 한 제전이 성행하였다.
팔관회(八關會) 이전에 평상적으로 정월 보름, 초파일 등에 행해지던 연등회는 등 공양의 법회로서 등불을 밝히는 광명한 의식이었으나 한때 중단되었다가 다시 복구되면서 팔관회로 변화 발전하여 중요한 국가행사로 행해졌다.
군신 모두가 노래하고 춤추고 술마시면서 즐기는 동시에 불덕을 기리고 천지신명을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안태를 기원하였던 것으로 아마 이 시기만큼 나라 전체가 불교문화예술로 꽃피웠던 것 같다.
민간춤의 불교의식화-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 연등회가 부처를 공양하고 봉사하는 행사인데 반하여, 팔관회는 천령, 오악, 명산, 대천, 용신 등 주로 토속신을 모시고 받드는 토속신에 대한 국가제전이라 하였고 여기에서 불교문화가 자연스럽게 서민의 토속신앙과 합치되며 하나의 국가제전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민들의 민속춤과 불교의식과의 접합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민간에서 행해지던 춤이 사찰로 들어가 불교의식무로 자리 잡은 것은 불교라는 기존체계가 민간의 춤을 끌어들여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였다.
여기에서의 의미는 불교가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포용성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실제로 절에는 산신각, 칠성각 등 여러신이 모셔져 있는데 이것은 불교가 민속신앙을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과정을 거치며 민중이 추는 생동적 춤이 불교적인 정적인 춤으로 양식화된 점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춤에서도 민간에서 즉흥적으로 너울거리며 추던 허튼 춤, 입춤 같은 동적인 춤이 불교작법의 나비춤과 같이 규격적이고 형식미를 갖춘 정적인 춤으로 변화한 것 등은 종교의식화(의례화) 관점으로 볼 때 자연스러운 변이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민속춤의 요소가 불교로 들어가 불교의식으로 정착한 경우를 검토하였는데 불교의식무로서 불교작법은 나비춤, 바라춤, 법고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불교의식무의 민속화- `조선불교통사'에 보면 포교방법으로 주로 ‘고무’를 하였다고 하는데 북을 두드리는 법고가 중요시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조때 억불숭유 정책과 함께 불교가 쇠퇴하여 중엽 이후 불교신자의 질적 저하라는 역사적 사실과 결부되어 불교의식무는 다시 민중적 몸짓을 되찾아가며 민중의 춤새로 민속화한다. 종교적 위엄을 갖추고 법무로서의 권위를 지니던 의식무가 시각, 청각을 통한 포교의 수단으로 거리로 나오게 되면서 민간에서는 형식미학적인 불교의 춤을 민중의 춤으로 발전시켜 민중미학적인 민속춤의 일환으로 만들게 된다.
조선조에 내려와 정립된 민속춤 중에서 여러 형태의 불교적 색채의 춤을 볼 수 있다.
각 지방의 탈춤에서 첫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상좌 춤이라든지 둘째 과정의 노장과장에서 나타난 노승춤 또는 먹중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민속음악 가운데 굿의 무가에서도 부처님의 공덕을 염하여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던 염불이 화청으로 성악화되고 염불요로 쓰이는데 서도지방과 전라도 지방 무가의 염불과 자진염불에서 비슷하게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불교의식의 춤과 음악이 민간으로 나오며 민중적으로 민속화된 경우를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승무의 춤틀을 이루는데 불교요소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으며 발전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